젊음의 추억

33년 전 추억 이야기

테너 2015. 10. 30. 11:52

 

 

내가 처음으로  간 

교직생활의 장소는 시골 면소재지의 고교였다.

교장과 교감 선생님은 근심스런 얼굴로...

나를 만나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너무 과열돼 있어요....

조심하세요... 이상한 소문이 나면 안 됩니다."

이전에 우리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골치 아픈 사건이 있었다며...

특히 교장선생님은 만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하시고...

 

어느 날 조용히 부르더니 

우리 집에 과년한 딸이 있는데...

내 사위가 되어 줄 수는 없겠소?...

나는 말문이 막히는 걸 참아가며...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은 감사하고 영광으로 생각 되지만....

저는 장래를 약속한 사람이 있거든요...죄송합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세상 그렇게 아이들 조심하라고 하시더니

결국은 자기 딸 나에게 소개하려고 그러셨나?"

 

어느날 교장 선생님

사귄다는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 교장 선생님의 딸과 사귀는 것이 맞느냐며 물어서..

금시초문인 나의 표정을 보고 금방 알고

"그럼 그렇지나와 그분 따님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라며......

 

30주년 기념 동창회에서 만난 

그 때 짝꿍이었던 영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들었다.

아예 영어 선생님 집에 아버지와 단판을 짓기 작정하고 오셨다 한다....

딸을 우리 집 며느리로 데려 갈테니 허락해 달라는 압력을 행사하셨다.

그렇게 해서 영어 선생님은 그 학교에서 5년 만에 퇴직하고 나오셨다.

그 영어 선생님 생각하면 그렇게 아까울 수 없다

성품은 비단결 같은 온유한 마음에 단 한번도 낯을 붉히거나 화를 내는 법이 없던

한결같은 미소로 나를 대하던 모습...얼굴빛이 선한 미인이었고

어디 나무랄 데가 없는 참한 얼굴을 가진 처녀 선생님

나와는 짝꿍이라며 선뜻 사진 촬영할 때

팔짱을 끼라며 팔을 내어 주기에 엉겁결에 낀

부드러운 살결이 전해진 촉감은 33년이 지난 지금도 내 뇌리에 남아 있다.

팔짱을 낀 순간 전율이라고 할 만큼 부드런 촉감은 지금도 기억되는 짜릿함이었다.

그 때 팔짱 끼고 작꿍이라고  선포하시고 음악회도 오시고...

그런 싸인을 전혀 모르고 지나쳐 버린 미련한 놈이다.

 

 인생을 잘 몰랐던 나는

그 때 옆에 있는 영어 선생님이 신부 감으로 보석 같은 분인지 

교장선생님은 알아보고 자기 집 며느리로 점찍어 놓은 다음

영어 선생님 집으로 쳐들어와서 그 아버지에게 단판을 지을려고 하였지만

그게 어찌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학교 버스에 올라 노랠 흥얼거리면 따라 부르던 선생님 목소리가 생각난다.

아련한 노랫소리가 참 아름답게 들린다면서 활짝 웃던 모습도 떠오르고...

 

교무실 많은 선생님들 앞에서 나를 자기의 짝꿍이라고 공포를 하셨는데...

영어 선생님과 나는 상업을 선택한 2개의 반을 서로 한반씩 담임을 하며

시험을 보면 양쪽 반의 아이들을 성적 순서대로 등위를 만들며 시험 치룰 때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서로 상의를 하고 교무실 자리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알려 주면서 남자가 상담을 못할 일은

영어 임 선생님이 대신 상담을 하시고

나에게 귀뜸 해 주시던 기억 중에

우리반 학생 한명이 어떤 성범죄 전과자에게 순결을 잃은 사건을

어떻게 할지를 몰라 쉬쉬하면서 넘어 갔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 같으면 그 전과자 녀석은 중벌을 받을 텐데...

여자의 수치라는 생각 때문에...

눈감고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반 학생 중에 얼굴 예쁜 학생 한명을

다른 고교 다니는 녀석이 납치 하려고 해서

찾아가 혼내 준 기억도 있고 둘이서 같은 상업과 학생들을 담임하며

정말 오누이처럼 짝꿍처럼 서로 돕고 같이 고민해가면서 1년을 그렇게 지내고

모교에 교사 자리가 비어서 은사선생님이 불러 자릴 옮기게 될 때

송별회에 오셔서 이별의 정을 나누고 서운한 마음으로 배웅하던

영어 선생님을 맘속에 담아두고 좋아한다는 말을 못하고 떠나 왔었다. 

 

자꾸 우리는 짝꿍이라는 말을 하였지만

짝꿍이라는 말 뜻을 그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란 뜻으로 만 알던 시기였다 

일어를 전공하신 같은 또래의 박 선생님이 왜 둘이서 자꾸 짝꿍이라고 하냐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낄낄대는 이상한 모습을 보면서...

어휴~~ 짝꿍이라는 단어는 함부로 쓰는 단어가 아닌가?

그런 생각만 했었고....

 

내가 모교 재단에 와서.. 음악회에 출연하던

어느 날 찾아오신 영어선생님을 잊을 수 없었지만...

그 일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고 지나쳐 버린 곰탱이 인간이었는지...

참 덜 떨어진 쎈스 없는 바보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내가 출연하는 음악회에서 독창을 하던 때 였고....

자기 여동생과 같이 찾아와 격려를 해주면서

살갑게 대하던 기억은 아직도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아무런 이해관계도 상관도 없는 나를 살갑게 대해 줬지만..

사실 영어선생님은 넘 볼수 없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참 바보처럼 좋은 사람을 놓쳐 버린 기억.... 

용기를 내서 좋아한다고 말이나 해 볼껄...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그랬다... 

어제 외손자를 봤다고 ... 카카오 톡에 올려놓았던... 그 모습이 낯설었다....

2015년 가을 날 11월을 앞둔 1030일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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