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얼굴은 이미 40대 들어서 검버섯이 있었다.
그 때 본 아버지는 조각같은 얼굴에 검버섯 만 없으면
요즘 말로 탈렌트가 서러워 울고 갈 윤곽을 가지고 계신 분이지만...
아버지를 젊은 첩실에게 빼앗겨서...어쩌다가 볼 수 밖에 없던 어린 시절이었다.
지금 판단으로는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동란을 거치며
남자들이 많이 죽고 살아남은 남정네가 소수일 때
아버님과 같은 잘 생긴 남자를 그냥 두질 않았겠다는 생각과
조각미남의 눈웃음은 여인을 녹이는 큰 무기였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님은 가끔 하늘 보시며 긴 한숨을 밷고..
빨리 죽어 버리고 싶다는 말씀을 곧 잘 하셨다.
그러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 하실 때는 꼭 아버지가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하시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 기도를 듣고 속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님이 소천한 다음 몇년 후 아버님은 병중 세례를 받고 소천하셨다.
그 때는 몰랐다
어머님의 굴욕적인 삶을 몰랐고
아버님은 한량끼가 넘치는 분임을 몰랐다.
매일 북을 만든다며 여기 저기
소가죽인지 말가죽을 말리던 집안의 풍경과
어려서 박초월. 박동진씨가 젊은 얼굴로
우리집에서 숙식을하며 아버님께 판소리를 사사하는 것도 몰랐다.
나중 큰누나가 알려줘서.... 젊은 박동진씨와 늙어 C.F에 나와서
제비 몰러나간다... 는 멘트를 올리는 모습과 비교하니
꼬맹이 적에 봤던 젊은 그 양반이 박동진씨인 줄 알았다.
아버님이 판소리에 몰입하여 살 때
어머님은 온갖 고생하시면서 외아들인 나를 두고 하신 말씀이
너는 아빠와 같은 인생을 살지 말라고 하셨다.
종류는 다르지만 나 또한 음악의 인생을 살고 있다.
DNA의 유전자 속에 풍류의 기질이 숨어 있나 보다.
아버님은 어느 날 한번씩 집에 들어와 전답을 팔아서...
집을 나가고 또 그렇게 .....부잣집인 우리 농토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두분 다 일찍 세상을 뜨셨다
어머님은 19살 되던 해 대학 시험 치루던 중에 돌아가셨다.
면접을 남겨 놓고 내려와서 어머님의 임종을 허망하게 봐야만 했다.
.
그 때 나타난 첫사랑은 어머님의 떠난 마음의 빈 자릴 다 차지해 버렸고...
집안이 망하여 돌아가신 어머님은 밤의 꿈속에 나타나
살아 계신 모습으로 한마디 말씀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 보시곤 했다....
반복적으로 꾸는 꿈의 내용은 항상 살아 계신 꿈이었다
어디 다녀 오시느냐고?
이제 가지 말고 같이 살자고 매달리다..
깨어나는 꿈은 항상 반복 되는 꿈이었다.
꿈 속에서 흘린 눈물 때문에 항상 벼개는 젖어 있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군대는 내가 유일하게 선택 할 피난처였고
그곳에서 어머님과 첫사랑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딸 부잣집의 외아들... 귀하게 만 자라 온 세월
삭막하고 인정사정 없는 살벌한 군대....
어느 누구도 면회 올 사람없는 군대생활
그곳에 교회와 군종 장교인 목사님이 없었다면...
외아들로 자란 나는 틀림없이 죽어 버렸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첫사랑에게 마음 을 빼앗겨 싱싱한 젊음의 날
집안 망하고 여인을 사귈 맘도 사라진 상처 난 마음 뿐
지금 생각하면 마음씨 고운 예쁜 여자들 참 많이 있었는데
<알퐁스도테>가 지은
단편소설 <별>의 <스테파네트> 아가씨처럼 느껴지던
첫사랑의 모습과 그 속의 주인공 목동의 모습은 나의 모델이었다.
그러니 여인의 입술을 훔칠 수 없는 바보가 될 수 밖에 없던 주인공을
내 마음을 감동케 한 모델로 삼았으니 첫사랑을 어찌하지 못했다.
나도 선친을 닮아서 40대부터 검버섯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늙어서 얼굴에 검버섯이 여기 저기 피어 나고
거울 속 얼굴에 아버님의 모습이 들어있다...
내 얼굴을 보고 젊을 때 알던 여성 지인들이 한마디 씩 한다.
얼굴이 준수한 미소년이었는데.... 어느세월에 이렇게 바뀌었느냐? 고
그 소릴 들으면 더욱 지난 세월이 억울하다...
이미 흘러버린 세월 거울에 비치던
젊은이는 어느 새 거울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 아버지를 닮은 남자...
절묘하게 합성해 놓은 아빠 엄마를 닮은 남자가 거울 속에 서있다.
젊어서는 아버지의 얼굴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나이 들어가며 거울 속에 아버지와 어머님의 얼굴이 어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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