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

재능과 천직

테너 2018. 9. 3. 21:12




가끔 내가 음악교사가 된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때가 있다.

다른 직업을 가졌더라면 생각 만 해도 끔찍하다는 느낌을 가지고있다.

음악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다른 일을 하다보면 금방 느낀다.

어느 날은 시험 감독을 들어 갈 때가 있다.

고통의 시간이 흐르는 날

그저 멍 하니 시험 치루는 어린 학생을 봐야 한다는 사실이 지겹다 못해

고문하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성격이다.

그런가 하면 음악을 하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어찌 빨리 지나가는가?

어느 시험 감독 하러 가는 날

동료 교사의 말씀이 <오늘은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의견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 선생님이 가여워 보였고​ 수업이 얼마나 힘들게

느껴지면 오늘은 편히 쉴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올까?

연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몇해 전

세상을 떠나간 사촌 형님이 떠올랐다.

강의 하기가 싫다 고  고백처럼 하셨다.

국어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들에게 국어의 낱말 풀이 개념파악

시에 나타나는 핵심 낱말(키워드)과 작가의 의도를 풀어 설명 할 때

고통을 느끼며 학습 준비에 대한 고충을 호소하던 사촌형님이 생각 났다.

명예퇴직하시고 3년 만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힘든 교직 생활을 그만 두고

3년 동안 정말 행복해 하셨다는 형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 형님은 성격이 과묵하시고 평소에는 말씀이 없으신 내성적인 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 하고 시를 지어 문단에 등단하고

그 덕에 어느 지방대학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아서​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형님이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국어교사가 되어 평생 후학을 길러내는 일을 하다가

명예퇴직 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직업은 적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의 주장이다.

직업이 잘못되면 평생 고생하고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는다는 논리의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먼저 간 친지들 가운데 그런 직업이좀 있다.

두명의 후배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들 다 사설 학원을 경영하며 생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이다.

 

강사 섭외와 갈등 수험생 유치작전 등

다른 학원과 경쟁을 벌여야 되는 현실이 녹녹치 않았을 것인데

때를 맞춰 사교육비 절감 어쩌구 하며 매스컴이 떠들어 대면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생존권에 위협을 받게 된다.​

그 두사람은 다 일찍 세상을 떠났다

한명은 간암으로 다른 한명은 뇌출혈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 두사람 때문에 며칠 간 우울하게 지냈던 날들이 있었다.

모두 교회에서 알고 지내던 후배들이었다.​

나는 한량인 아버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음악을 좋아 하셨고 조상으로 치면

세종대왕이 18대 조상이며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황진이의 시조에 나온 벽계도정(벽계수)님은 15대 조상이고

증조 할아버지와 주위 형제 분들도 음악에 열정이 대단한 분들이다.

부친은 맨날 집에서 판소리를 배운다고 소리꾼을 초청하여

숙식을 제공해가며 소리공부를 하셨는데

날마다 어머님은 소리꾼들 뒷바라지에 고생을 하셨다​

<제비 몰러 나간다>  CF에 나온 바로 박동진 선생님이 스승이란다.

박초월 명창(조통달의 모친) 과 인연도 있었고

 

그러다가 집을 떠나 고수가 되고 판소리에 미쳐서

집안을 돌 보지 않는 한량이 되셨다.

열정은 있어도 별로 잘 하신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고​

어머님의 고통과 집안의 형편은 뻔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빠처럼 가정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심을 하고 공부도 열심으로 하는 편이었고 고등학교도 제법 좋은 학교에

입학을 하여 장래 법관이 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고교에 진학하고 교내 예능 경연대회가 시작 되던 날

건물의 꼭대기 음악실에서 들리는 <윤용하> 작곡

<보리밭> 이라는 노래를 듣고 내 영혼이 전율 하는것을 느꼈다.

내 생전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었던 경험이 없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보리밭이라는 곡의 악보를 찾아 배우기 시작하고

마침내 피아노를 다외워 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배우러 가서 그곡을 능숙하게 치자 어디서 배웠느냐고

피아노 선생의 질문에 배운 적이 없다는 대답을 믿질 않았던 선생님

나중에 다른 곡을 치며 내 말이 사실이란 걸 믿는데 여러 날 걸렸다.

그렇게 시작 된 내 음악에 대한 열정은 

음대를 진학하고 어느 사이 음악교사가 된 나를 발견하게 되었지만....

한번도 음악 선생이 된 걸 후회 해 본 적은 없다.

제자들과 음악을 즐기다 보면

행복한 감동이 밀려와 몸에는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여고생들의 맑은 소리와 음악성이 좋은 학생의 음악은

나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지름 길이 되어 음악 으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제자의 음악 적 능력이 부러워 칭찬을 하면

그들 중  몇명은 음악을 전공하게 되고 음악인이 된 걸 보면 보람을 느끼기도한다.

 

가끔 집안 내력을 생각하다가 운명이란 걸 느낄 때가 있다.

타고 난 운명을 거역하면 그것이 천벌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됐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기도록 재주를 주셨는데 그것이 천직이라는 생각이다.​

 


'나의 주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다시보라  (0) 2019.02.03
행복하려면  (0) 2017.12.24
축구 경기시간을 60분으로 개정한다?  (0) 2017.06.18
한국 축구  (0) 2017.06.14
용서의 자격  (0) 2017.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