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

용서의 자격

테너 2017. 5. 4. 02:19

 

 

 

용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응징 할 수 있을 때

응징하지 않고 오히려 죄를 용서 하므로 크게 빛을 발하게 됩니다.

강한자가 약한 자를 응징하며 다스릴 때

모든 세상 사람은 당연하게 여기며 그 이치를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반대로 강한 자가 약자에게

용서 받지 못할 죄를 범 할 때

약한 자는 용서 할 자격이 없습니다.

힘이 없는 자가 강한 자를 용서하는 것은

비굴함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비참하게 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응징 할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통쾌하여 정의가 살아 있다

표현하며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박수를 칩니다.

 

약한 자는 정의 밖에 호소 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약한 자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짓은 

같은 처지에 놓인 약한 사람들의 공분을 사게 되는 것입니다.

 

5.18 사건은 아직도 해결이 안된 사건입니다.

유럽은 그런 범죄를 반인륜 범죄라 하여 시효를 없애고

히틀러  정권에서 자행 된 그 때 범죄 자를 찾아 내어

90세가 넘은 금방 죽을 인간도 오늘 날 찾아내어 단죄를 합니다.

 

죄는 무서운 것입니다...

누군가 그 죄를 대신 지불하지 않는다면

당사자는 댓가를 지불 해야합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올 바른 이치입니다.

내가 범한 죄를 그 죄악을 대신 짊어진 사건이 기독교 십자가의 사건이지요

 

세월호 사건 때

수학여행을 인솔한 교감 선생님

그 세월호를 탈 계획이 없었지만

다른 학교의 양보를 얻어 그 배에 올라 탈 수 있었고

그 세월호가 뒤집혀 많은 제자들이 죽자

엄청난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로 마감을 했지요.

그 교감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사건이고

그 죄과를 이미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속의 의미를 알았다면

 

오히려 살아서 제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대변하고

그 당시 상황의 엄중함을 국가의 직무 유기를 알려서

또 다시 이땅에 억울한 희생이 없도록

죽음보다 더 처절한 싸움을 해야만 했던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역사 앞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찌....

살아가는 인생 앞에 진지하게 대답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인간은 많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지금도 살아서 자기는 죄가 없다  큰 소리 치며 살아가고

그것을 옹호하고 당연시 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5.18은 당시 권력에 의해 자행 된 흉악한 범죄입니다....

일제 시대에 자행 된 범죄도 제대로 청산 못한 역사는 계속 우리의 역사를 비웃고 있으며

그 범죄자들은 지금도 야스꾸니 신사에 귀신으로 살아 있으며

그곳에 봉물을 바치며 일본의 지도자는 머릴 조아리고

그것을 아름다운 미덕으로 생각하는 집단이 있다 는 것을 결코 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구 경기시간을 60분으로 개정한다?  (0) 2017.06.18
한국 축구  (0) 2017.06.14
메디칼 푸어   (0) 2017.02.05
엄마의 후손  (0) 2016.04.11
나는 못난이  (0) 2016.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