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젊었을 때 아버지는 첩질이나 하러 돌아다니는 건달로서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먹을 것이 생기면 먼저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행복해했다. 어머니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자신을 희생으로 자식들을 살려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인한 존재이다.
세월이 흐르고 자식들은 결혼하여 각자 자기 앞가림을 하게 되었다. 시골에 홀로 남아있는 어머니를 큰 아들이 아파트로 모셔와 함께 산다. 어머니가 오기 전에는 고부 사이가 좋았으나 점점 나빠져 간다. 어머니는 마당 시멘트를 파내고 호박을 심고 선물로 들어온 비싼 화분의 꽃나무들을 뽑아버리고 거기에 가지와 고추를 심어 키운다. 손자 손녀들에게 된장국과 호박잎 쌈 가지와 고추 등 신선한 야채를 먹인다.
며느리는 어머니에게서 두엄 썩는 냄새, 제초제 냄새, 시궁창 썩는 냄새가 나서 머리가 아파 못 살겠다고 투덜거린다. 언니가 아파서 간호한다는 거짓 핑계로 자주 집을 비운다.
동생에게 한 달 간만 어머니를 모셔달라고 부탁한다. 어머니가 동생 집으로 간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집을 나가버리고 만다. 형은 고향으로 가는 국도를 달렸다. 국도 변에 차를 세우고 길게 숨을 들이쉰다. 어머니의 향기로운 냄새가 온몸의 핏줄 속으로 빨려 들어온다. 어머니의 향기가 사무치게 그립다.
어머니한테서 나는 냄새는 무슨 냄새냐고 물었을 때, “이놈아 에미한테서 나는 냄새는 에미가 자식 놈들을 위해서 알탕갈탕 살아온, 길고도 쓰디쓴 세월의 냄샌겨.“ 라고 대답한 어머니의 말에 나는 책을 더 읽지 못하고 몇 번이나 되뇌어 보았다. 어머니의 쓰디쓴 세월의 냄새를 읽히면서 아이들은 자란다. 지금의 아이들도 늙으면 그들 나름대로 가족을 위해 일한 쓰디쓴 세월의 냄새가 날 것이다.
문순태 작가는 1941년에 전남 담양에서 출생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6.25 전쟁으로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어린이나 어른이나 모두에게 힘든 세상이었다. 마당 한 구석이라도 호박이나 감자를 심어 열매를 거두고 싶은 작가의 그 슬픈 심정을 알 것 같다.
16-5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
지은이 문순태
문학사상 발간 2015 3.26
1판24쇄 제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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