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날 동안 무슨 일을 하든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
그 허망함을 느낀 것이 엄마의 죽음이었다.
죽음 앞의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아무런 의미도 뜻도 발견 할 수 없어서
한동안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며
삶의 목적을 찾느라 밤잠을 못자고 생각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참선과 같은 것이라는 걸 알았다.
인생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와 뜻이 없다 는 걸
어머님의 죽음을 통해 느끼고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인생의 해답과 뜻을 찾아
깊은 생각에 몰입을 하며 지내게 되고
그 생각이 내 젊은 날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어머님의 삶 시집오셔서 맘 편하게 살아가신 날이 없었다.
큰 아들 며느리로 대가족을 부양하느라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몸에서 휘파람이 날 정도로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바쁘게 움직이시던 엄마의 삶이 나의 뇌리 속에 저장 되어 있다.
가마솥에 가득한 쌀을 씻으려 새벽에 일어나
옛날 재래식 부엌에서 고단한 삶을 사셨다.
남편은 첩실을 얻어 살고 집안의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깐깐하고
아들 낳지 못해서 첩실을 얻어도 뭐라 말 한마디 못하는 삶을 사신
어머님은 18세에 시집 오셔서 32세 때 외아들을 낳기 까지 죄인처럼 사셨다.
거기다가 남편은 판소리에 미쳐서
판소리 하는 소리꾼을 불러다가
집에서 소리를 배우고 동네사람들 까지
북적거리는 집안 손님의 밥을 해내시느라 많은 맘고생을 하셨다.
옛날 조선의 여인으로 굴종적인 삶을 사신 어머님
요즘 같으면 어림없는 남편의 외도를 묵묵히 참아내며
딸들과 외아들을 키우며 고통을 감내하며 사신 분이다.
어느 때는 허공을 보시며 긴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는 말씀이었다.
엄마! 아들은 어쩌라고 빨리 죽고 싶다고 그래요?
그러면 엄마는 그래! 너를 보면 오래 살고 싶어진다. 하고 웃으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아예 집을 떠나 첩실에게로 가출을 하셨다.
할머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는 우리가 사는 집에 거의 오지 않으셨다.
오히려 어머님은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얼굴이 밝아지셔서 생활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님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첩실을 버리고 들어 올테니
첩실이 낳은 아이들을 키워 달라는 내용이었다.
어머님은 거절하셨다.
내가 낳은 자식들도 힘들게 키우는데
어떻게 내속으로 낳지 않은 아이들까지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난 당신 포기했으니 그 첩실과 함께 살라는 말씀을 하시며
어머님은 아들과 딸들 키우며 살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상 이혼 상태로 갈라서는 내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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