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딸 부잣집이라
누나들 공격의 표적이 되었다.
딸 아홉의 외아들이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모두 외아들인 나에게 관심과 정성을 쏟았다.
누나들 중에 큰 누나 만 빼고
모두 나를 견제하고 기회만 있으면
나를 때리고 혼내 주다가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걸리면
혼쭐이 나고 집 밖으로 쫒아 버릴 때도 있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누나들의 등쌀을 피해서
외갓집을 찾아 가 방학이 끝날 정도 되면 우리집에 돌아 왔다.
외가에는 내 또래의 사촌들이 많았다.
동갑내기인 영경이 3살 위의 재경이 형 바로 밑에 동생 뻘 되는 한경이 까지
그래서 외사촌들과 여름과 겨울 방학이 되면 냇가로 가서 멱을 감고
겨울에는 꿩을 잡으러 산 능선을 타고 달리고
솔방울 위에 독약을 숨긴 콩을 놓아 잡기도 하였다.
우리 동네는 고구마가 안나는 평야 지대라
외갓집은 밭농사 풍년인 건넌방에 고구마는 엄청 많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는 천국이었다.
초등학교1학년 여름 방학 때
외갓집을 향해 갔지만 우리집에 소식을 전 하지 않고 갔다.
어릴 때라 더위 속에 가다가 그늘이 나오면 쉬면서
천신만고 끝에 하루 온종일 걸려 외갓집에 도착했다.
무사히 도착 할 수 있었던 것은 외갓집 뒤에 솟은 산을 보며 찾아 갈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에 할아버지가 외갓집에 오셨다.
우리 손주 없어졌는데 여기 와 있느냐고 하시며...
깊은 잠에 빠졌던 나는 잠결에 할아버지에게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나를 확인 하신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이
안도하시며 다시 집으로 가셨다.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큰 잘못을 한 손주인데....
이런저런 말씀 안 하시고 다시 오신 길을 따라
집으로 가신 할아버지 걸어서 40리 길
옛날 교통이 불편한 시절엔 한나절 가야 만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집에 들어오지 않는 손주를 찾아 밤 새워 길을 걸어
새벽 미명 외갓집에 도착 하신 할아버지의 사랑을 가끔 생각하며
손주가 있는 걸 확인 하시고 아무 말씀 하지 아니하고
왕복 80리 길을 되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사랑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외아들이란 특권을 충분히 누린 손주였다.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가문은 왕족이니 행동 조심하라는 말씀도 기억나고
세종대왕의 18대 손이며 벽계수(벽계도정)님의 15대 손이며
황진이와 일화는 꾸며 낸 허구라는 말씀도 기억나고
남원의 사매면에 영해군 사당이 있는 것도 알고
원주 문막 동화리에 집성촌도 말씀하신 기억이 있다.
손주 자랑은 이상하게 하셨다...
우리 손자 놈은 얼굴이 너무 예뻐서 탈이여...
사내놈이 저렇게 얼굴이 고와서 어디다 쓰것써...?
계집애보다 얼굴이 더 이쁘니
나중에 가시나들이 꽤나 귀찮게 헐꺼가텨...
어릴 때 하시던 말씀인데... 은근히 손주 자랑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맛있는 것 숨겨 놓으셨다가... 몰래 나 혼자 만 불러내서
얼른 주시고 시치미 떼고 들어 가시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두 그렇게 예뻐하고 챙겨 주시던 우리집 어른들이었으니
결국 버릇 없는 외아들이 되어서 덩치 큰 누나들과 나중엔 맞짱까지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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