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합창단 파견근무
백골부대로
휴가를 마치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첫사랑 그녀의 얼굴이 생각나서 미칠것 같았다.
그럴 때를 가르켜 상사병이라고 하는가?
어느 날
대민지원 나가서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
그리고 마음속의 응어리를 어찌 할 수 없어
소리를 지르며 울고 오다가
우리 중대 옆에 있는 대대의 기간병들에게 잡히고
우리부대에 보고가 되고 술먹은 병사의 이름이 나 라는걸 알게된
우리중대에선 그 병사는 절대 술을 못먹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하며
혹시 다른 사람 아니냐고 반문을 하다 나로 판명이 되자 부대는 또 한번 발칵 뒤집혔다.
중대장님이 오셔서 지프차로 데려가고
군종 목사님은 나를 염려하며 전화를 통해 기도를 해주셨다
어머님의 죽음과 애인 때문에 괴로와 하는 나를 진정 위로 하고 염려를 하셨다.
군대에서 흔히 그런문제로 자살하거나 탈영하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수에 젖은
슬픈 그의 얼굴은 항상 내 눈앞에 어른 거렸고
또 다른 한편 이리역 대합실에서 만난 현자로 생각되는 그 분은 "
인연이 아니니 잊어라!" 하며 두가지 생각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군인교회에서 군종사병 집회 중에
안이숙씨의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아 기도하다가
방언을 경험하게 되고 정신적인 안정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취약한 새벽 4시에
보초근무를 자원하여 서게되고
근무를 하고 5시에 교대한 다음 내무반에 총검을 두고
혼자 기도하는 장소로 산속으로 올라가 6시 기상 나팔을 울릴때 까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기도는 단 한가지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나와 인연이 아니면 잊게 해달라는 기도와
그녀가 잘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정말 오래가지 않아서
그 얼굴이 떠오르질 않게 되었다..
그리고 군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육군합창단 차출 명령이 떨어지고
백골 연대에선 두말없이 내가 뽑혀 육군본부로 가게 됐다.
전방의 말단부대에서
육군본부 본부사령실로 파견명령을 받고 들어온 쫄병인 나는
군생활이 어느곳은 지옥이요 어떤 곳은 천국과 같다는걸 실감하며
꿈 같은 육군본부에서의 파견근무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우선 서울 한복판이라
토요일 일요일은 외박을 나가게 되고
군가를 배우는데 예쁜 여군들이 함께 있어서 더욱 즐거웠고
주일날은 육본중앙교회에 가서 성가대를 하며 다른 여군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때 내 모습은 피부가 곱고 얼굴 또한 환한 얼굴로 거울에 비친 모습은
내가 봐도 준수하다 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처럼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적은 아직 없다
그 기간 내인생 중 최고의 하일라이트 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어딜 가든지 여성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고 내무반 동료들도 나를 부러워 하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나이 만22세
시리도록 푸르른 날 고참이나 동료들은
사회에서 수 많은 여자를 울렸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난 정말 여자를 잘 모르고 정에 약하여 한여자에게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머저리 같은 자로 실연의 열병을 통과하며 이제 바야흐로 한명의 사내로 탈 바꿈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