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제자 그리고 순회 공연
첫 제자 그리고 순회 공연|테너-살며 사랑하며
테너 | 조회 15 |추천 0 |2004.11.05. 21:16 http://cafe.daum.net/coolwise/F47g/103
학교 숙직을 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직장에서 하는 숙직이고
옛날 야간경비 하던 생각이 나서 감회가 새로웠다.
얼른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마친 후
저녁을 불러 먹고 숙직실로 들어가
TV을 보며 반쯤 누운 상태로 비몽사몽 누워서 뒤척이고 있는데
밖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차리고 밖을 내다보니
7~8명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뭘 들고 숙직실 안으로 들어온다.
옷들은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은 모습에
집에서 가져온 과일과 열매채소가 들려있고
자리에 차려 놓고 먹으라며 이야기하고 싶어 왔다는 말을 한다.
처음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할 때
강력한 주문이 총각 선생이니 여학생과의 이상한 추문이 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씀과 항상 복도에서 마주칠 때 마다
“이 선생 여학생 조심해!”
“아이들이 과열 된 것 같아 조심스러워..”하는 경고 때문에 항상 부담이 됐다.
할 수 없이 고교 선배님 되는 동료교사를 불렀다
여학생들이 숙직실에 와 있으니
나와 함께 있어 달라는 부탁을 했더니
흔쾌히 수락하고 합석을 한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 교장 선생님이 옹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사람 없으면 제자 중에서 한명 골라서 장가들도록 하세요.” 했다면
얼마나 더 자유롭고 즐거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무사히 여학생들을 돌려보냈고
학교생활도 익숙해지고
다른 선생님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즐거운 생활이 시작 되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음악시간은 그야말로 신나는 시간이 되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을 모집하여
합창단을 만들고 순회공연도 하고
단합대회 겸 놀러 가기도 하며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이리,익산 교장 단 회의가
우리학교에서 열리고 합창단을 선뵈라 지시가 내려지고
무용부와 같이 공연이 열려 우리학교 특유의 혼성합창이 나오고
무용부의 화려한 춤은 교장단들의 시선과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지금 모교재단 교장 선생님이 오셔서
그때 공연을 관람하고 내 이름을 알게 되고
모교출신이란 것도 그때 알아서 2년 뒤 모교재단에서
음악교사를 채용할 때 나를 스카웃 했다 말씀을 하셨다.
그 때 열정은 순수했다
누구의 도움도 안받고 음악이 좋아서 합창을 하고
학생모집이 어려운 면소재지 학교의 학생모집의 일익을 담당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어느 날 인근 교회에 순회공연 차 갔었는데
마침 그곳에 우리 엄마의 이모님이 권사님으로 계시는 교회였다.
그 분은 돌아가신 엄마와 가장 흡사한 용모를 하고 계셨고
마침 목사님의 설교도 부모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비유해 설교를 하셔서
나는 이모할머님 모습 속에 엄마 모습을 발견하고
옛날 엄마 사랑이 생각나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눈물로 기도한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는
목사님의 설교내용과 아침밥을 그릇에 담으시며
주걱으로 한 숟갈 담으시며 기도하시고 또 한 숟갈 담으시며
기도하시던 모습이 교차되며 평생 외아들만 위하여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엄마 모습과 외모가 비슷한 이모할머님은
돌아가신 엄마의 모습과 똑같은 얼굴로 내 눈에 들어와
참기 힘든 눈물을 참아가며 찬양을 드리는데 합창단원이 벌써 알아차리고 울기 시작했다.
어머님 임종 직전 함께 예배를 같이 드린 분이 이모할머님이시고
나를 어떻게 키우고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소상하게 아시는 그분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고
내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고
합창을 하는 우리 학생들도 전염이 되어 울기 시작하는데
가장 노래를 잘하고 후일 경희대 음대 성악과에 합격한
제자 녀석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털석 주저앉아 울음보를 터트려 버리니
합창단은 노래를 못하고 그대로 울음바다로 변해버린다.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울고 있는데
인솔 책임을 맡으신 학생주임 선생님이
걱정 어린 눈을 하시며 앉아 계신 걸 확인하고
사태 수습 차원에서 찬양을 하나 해주실 것을 부탁했다.
그 선생님은 장로님으로 교회에서 찬양대 지휘를 하시는 분이셨고
지금은 목사님이 되셔서 목회를 하고 계신다.
나중 하신 말씀은 “하나님 이런 때 내가 나가서 찬양을 드리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는 간증을 하셨다.
모든 일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끝이 났다.
우리 학생들은 음악과 찬양의 위력을 확인하고 노래 속에 흠뻑 빠져
일과가 끝나면 음악실에 와서 노래하는 시간을 늘 기다리고 있었다.
첫 직장 첫 담임을 하던 우리 반 사랑하는 제자들
합창 경연대회를 일등하고
체육대회 응원상을 일등하고
입장상을 일등하고 환경미화 부문에 일등하고
체육대회는 일등을 못했지만 그때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 후로 지금까지 그 제자들이 연락을 취하며 가끔 만나는 일이 있다.
이젠 모두 아기엄마로 학부형이 되어 있지만
첫 직장 첫 제자들 천사 같은 여고 1년생들
지금도 내 머릿속에 그 때 모습으로 간직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