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사랑의 순례에 올릴 간증문(1)

테너 2007. 6. 23. 22:23

저는 익산군 만석리 389번지에서

9녀 1남의 자식들 속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님은 아들인 저를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곧 바로 누나들의 시기심으로 이어져

집안에 어른들이 없을 땐

누나들에게 집단 괴롭힘으로 나타났지만...

 

가장 큰누나 만 외아들인 나를 보호하는 모친과 비슷한

사랑 때문에 가까스로 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서 가장 아픈 추억...

내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이었습니다.

세살 터울인 여동생은 내가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가

돌아 오면 더운 날씨에 부채로  땀을 식혀주던 착한 여동생이었고

그 해 여름 내 여동생 경순이는 뇌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스란히 죽어가는 모습을 모두 지켜 본

나의 깊숙한 뇌리에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모습으로

자리잡아 언제나 나를 슬프게 하는

아픔의 원천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약 내 여동생이 아들로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살아 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집안에서 살려 냈을것입니다.

 

내 여동생은 집안의 남존여비 사상의 희생물이 되어

나를 살리고 죽은 여동생입니다.

 

모친은 아들인 나를 더욱 사랑했습니다.

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내가 원하는 어떤것도 모두 들어 주는 분위기에서 자라나

학교에선 외아들로 유명한 아이였습니다.

 

씨름대회를 해서 다른 아이들을 이기면

담임교사는 "외아들이라 보약을 많이 먹어서 힘이 좋다"며

그 이유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난 말이 늦었습니다.그 이유를 어려서 너무 용든약을 많이 먹어

머리가 나빠져 말이 늦어 진다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어째튼 말이 늦게 터지고 집안에서 모든 관심은 외아들인 나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루던 19살 겨울 1월 17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유는 외아들 대학 공부를 위해

장사를 시작했는데...같이 장사하던 사람이

어머님을 속이고 몽땅 부도를 냈고 또 설상가상으로 물건을 도둑 맞았습니다.

 

집안은 망하고 아버님은 일찍부터

밖에 나가서 첩실을  얻어 살고 있던 터라

나는 의지 할 곳 없는 고아 비슷한 처지로 전락을 하고

마음에도 없는 후기 대학을 들어간 나는 더 이상 돈이 없어

도피하는 마음으로 군대로 들어 갔습니다.

 

군에서 느낀 감정은 여러가지 였습니다.

누나들은 다 시집가고 어머님은 돌아 가셔서 누구 하나 면회 올 사람 없는 처지

전우들 중 모친이 면회를 오면 내 마음은 더 할 수 없는

부러움과 마음 속을 예리한 면도 칼로 찌르는 듯 한 아픔이 오는 걸 느꼈습니다.

 

군에 오기 전 사귀던 여자친구의 배신과

돌아가신 모친의 사랑이 그리워져서

꿈 속에선 언제나 어머님은 살아계신 모습으로

나타나 물끄러미 나를 처다 보시며 말 없으신 형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럴 때 마다 어디 갔다오셨냐? 며 아무 말이 없으신 어머님을 붙들고

다른 사람들은 죽었다 그랬는데 살아있어서 좋다며

이제 가지 말고 같이 살자며 울부짖다가 꿈을 깨는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 났습니다.